760편 논문, 스핀 광자결정·메타물질 연구 선구자에서 소설가로, 과학과 인문을 잇는 학자의 여정
푸단대 석좌교수, 전 한양대 교수 이영백 교수의 학문과 삶

빛의 길을 설계하고 전자파의 성질을 다루는 학문 즉, ‘빛과 전자파를 원하는 대로 다루는 기술’ 인 스핀 광자결정·메타물질·전자파 제어 연구를 선도해 온 이영백 교수. 한양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오랜 기간 재직하며 SCI 논문 500편 이상을 발표해 한국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석학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물리학회 회장과 기초과학관련학회협의체 회장을 역임하며 학문 공동체의 혁신과 국제화에도 힘을 보탰다.

IR52 장영실상(1992),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2002), 성봉물리학상(2014) 등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연구 성과를 공인받았고, 정년퇴임 후에는 중국 푸단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기초과학의 글로벌 확산과 국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과학과 인문을 넘나드는 행보도 두드러진다. 2018년 이주희 작가와 공저한 『사랑, 이별, 그리고 결혼의 랩소디』를 시작으로 올해 『소설 조선의 당쟁』까지 십여 권의 문학 작품을 펴내며 연구와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
본지는 이영백 교수의 학문적 여정과 소회를 듣기 그와의 터뷰를 진행했다.

이영백 교수
이영백 교수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내용.

학문적 여정과 연구 시작

· 교수님께서 물리학 연구, 특히 스핀 광자결정·메타물질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사실 학문 초기에, 다시 말하면 미국에서 박사학위 공부 중에서 반도체 등의 표면만의 물리적 성질을 전자분광이라는 방법으로 파악하는 연구를 하였습니다. 소위 실험 표면물리학이라는 분야로 이 분야가 점점 두께가 얇아져 왔던 반도체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제가 박사학위 연구를 하던 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표면물리학이 대두되고 저도 큰 흥미를 느껴 이에 도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초기 연구 시절 기억에 남는 도전이나 전환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표면물리학 실험을 하려면 우주와 같은 초고진공 장치 속에 시료를 넣어 그 진정한 표면을 원격으로 얻는 작업을 하고 아무리 초고진공 상태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표면은 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순물로 덮이게 됩니다. 따라서 표면이 청정 상태일 때 전자분광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표면만의 물리적 성질을 측정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연속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저녁에 실험을 시작하면 새벽까지 연속으로 정신없이 실험을 하던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는군요.

한양대 시절 연구 및 업적

· 한양대학교 재직 기간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연구 성과나 프로젝트는 무엇이었습니까?
앞에서 언급하신 스핀 광자결정, 메타물질 등에 대한 연구를 세계적 연구 초기에 착수를 하고 세계적 성과를 이룬 것이 한양대 재직 중 생겼던 일입니다. 이를 할 수 있게 된 계기는 한양대 재직 중 당시로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최대 예산이며 최장기 연구 프로젝트였던 과학기술부 지정 우수 과학연구센터 (SRC)인 ‘양자광기능물성연구센터’ 소장에 어려운 공개경쟁을 뚫고 선정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양대 역사상 최초의 SRC유치라는 기록도 남겼습니다.

· SCI 논문 500편 이상을 발표하시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폭발적으로 SCI 논문 수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상위 SCI 논문 수가 그랬습니다. 100편 단위로 논문이 늘어갈 때 큰 성취감과 세계적 우수 연구자로서 책임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2025년 9월 현재 500편을 많이 넘어선 760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양대 정년 후 지금까지도 계속 연구를 진행하며 SCI 논문을 산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숫자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한국물리학회 회장, 기초과학관련학회협의체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물리학 더 나아가 기초과학 전체라는 학문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전통 속에서 새로워지는 한국물리학회를 만들려고 힘을 기울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초과학 특히 물리학 위기를 조속 극복하기 위해 치밀하게 행동적 조치에 곧바로 착수, 국제적인 한국물리학회, 학회 혁신을 도모하고 국내 위상도 더욱 공고히 하였습니다. 특히 한국 물리학계의 국제적 위상 증진에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 한국 물리학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규모 국제학술대회를 다수 성공적으로 개최하거나 유치하였습니다. 또한 국제협력을 크게 강화하였습니다. 중국물리학회와의 교류 본격화, ASEPS (Asia Europe Physics Summit) 참석, 일본 응용물리학회 방문과 공동 심포지움 확대, 일본물리학회와의 본부 간 교류 정례화 추진 등을 나열할 수 있겠습니다.

정년퇴임과 푸단대 석좌교수 활동

· 한국 정년퇴임 이후 중국 푸단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한양대 정년이 가까워질수록 막막해졌습니다.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에 따라 대학교수 정년 나이가 65세로 정해져 있어 정년 연장이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사립대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고연봉인 이공계 석학을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던 중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보낼 때부터 알았던 중국 명문대인 푸단대 재직 동료 과학자와 상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푸단대에서 같이 연구를 지속하기로 되었습니다. 저에게 중국은 연구와 관련해 낯선 곳은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양자광기능물성연구센터 소장을 9년 동안 맡으며 중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18년 말 푸단대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진행해 달라는 정식 요청을 받았습니다. 푸단대에 임용된 최초의 한국인 석좌교수였습니다.

· 푸단대에서의 연구 환경과 한국에서의 경험을 비교해주신다면?
한국에서 정년을 앞두거나 정년이 지나면 연구비를 얻어낼 확률은 희박합니다. 정부 과제 대부분이 3~5년 단위로 진행되지만 정년이 가까운 교수는 과제 기간 중 퇴직할 가능성이 있어 평가에서 불리합니다. 정년이 지나면 연구실, 함께 일할 연구원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석학들이 "정정당당하게 연구비를 따면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정부에서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휼륭한 연구업적을 가지고 있고 정년 후에도 일을 하고자 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저의 경우에는 3년 계약으로 석좌교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업적심사를 통해 계속 연장이 가능합니다. 푸단대 등 명문대의 물리학 등 이학 분야 학생들의 입학성적은 의대 위주의 한국과 달리 최고 수준이므로 같이 연구를 진행하기에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 글로벌 연구 현장에서 느끼시는 가장 큰 차이점과 배움은 무엇입니까?
국가와 학문 분야 그리고 시기에 따라 연구 환경이 크게 달라지므로 세계적 리더가 되려면 시기에 따라 글로벌하게 가장 앞서가는 국가와 계속 협력을 맺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기초과학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비등하므로 중국에서의 활동 또는 협력도 매우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역적 그리고 시간적 안주는 글로벌 뒤처짐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연구자와 후학에게

·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앞으로 도전해야 할 연구 분야나 자세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물리학의 각 분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나가되, 융합적 사고와 AI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기초과학 연구자가 장기적인 연구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물론 정부 등의 장기적 지원이 필요하며 기초과학 연구자가 인류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사회적 존경과 대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학 활동과 과학자의 정체성

· 교수님께서는 소설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 과학과 문학을 병행해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고교 때 이래로 글 쓰는 것을 좋아했으나, 대학 이후 이과 공부 및 이 분야에서의 성장에 바빠 문학 작업은 생각만 가지다가 한양대 정년 즈음부터 물리학 분야가 아닌 쪽 일하는 시간도 조금 나는 거 같아 병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 처음 작품을 출판하실 때 일반적인 소설 형식을 탈피하고 공저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시도하고 특히 젊은이들 연애소설에 도전했는데 그 감정이 감당될까 걱정이 되어 젊은 여류 소설가와 공저를 감히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괜찮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집필하신 도서가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출간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중에 보람되거나 애로사항이 있었는지요?
현재 제가 8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그중 4편의 중국어판, 1편의 영어판이 출판되었습니다. 1편의 베트남어판이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추가 1편의 영어판과 1편의 인도어판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중국어판은 푸단대 한국어과 문학 담당 교수의 도움 덕분이 컸습니다. 제가 푸단대에 근무해서 그 교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푸단대 진출로 인한 선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베트남어판은 제가 베트남인 박사학위 제자가 많은데 그 제자들 소개 덕분입니다.

· 문학 활동이 과학 연구에, 혹은 연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학 분야를 경험하며 본래의 물리학 연구에 활력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더 폭넓은 사고 그리고 융합적 접근으로 과학 연구에 임하게 됩니다.
사실 메타물질 즉 투명망토 재료의 투명망토라는 개념은 1800년대 말 나온 H. G. 웰즈의 ‘보이지 않는 사람 (Invisible Man)’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듯 문학과 과학은 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자는 문학을 하지는 않더라도 항상 융합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 앞으로 집중하고자 하는 연구 주제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연구를 많이 했던 메타물질 흡수체의 상업화 개발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좋은 논문을 더 내는 것도 좋으나 기초연구 결과를 세계 최초의 상품화로 연결하고 싶습니다.
물론 메타물질 관련 더 심도있는 기초연구도 진행할 것입니다.

· 문학 작품 집필을 위한 계획은 어떠신지요?
8번째 장편소설인 ‘소설 조선의 당쟁 1’을 지난 6월 발간하여, 지금 내년 초나 중에 발간을 목표로 그 2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계속 조선 또는 근현대 관련 역사 장편소설을 집필할 계획입니다.

· 교수님께서 바라보시는 한국 기초과학의 미래 비전은 무엇입니까?
물론 노벨상 수상입니다. 특히 응용 분야 수상이 좋을 거 같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이 관련 산업의 메카로 되어 점점 하락하고 있는 한국 산업이 다시 성장 길로 들어서기를 진정 바랍니다.

 

과학과 문학을 가로지르는 이영백 교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푸단대 석좌교수로서 글로벌 협력을 넓히는 한편, 메타물질 흡수체의 상용화로 기초연구의 성과를 산업적 가치로 연결하려는 구상은 한국 기초과학의 경쟁력 제고와도 맞닿아 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융합적 사고와 AI 활용을 주문한 그의 메시지는 학문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또렷이 제시한다. 동시에 『조선의 당쟁』 후속편으로 이어질 집필은 과학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장을 예고한다. 연구와 문학, 두 축으로 확장되는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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