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 시기엔 ‘먹는 게 하늘’

중국 고사에 식위천(民以食爲天 · 먹는 것은 하늘이다)’이란 글이 나옵니다. 중국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글귀지만 중국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국인들에게도 먹는 건 하늘입니다. 요즘 들어 먹는 걱정이 많이 덜어졌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직후에는 연명(延命)이란 단어를 쓸 정도로 먹거리에 목숨을 걸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시계 바늘을 50년 앞으로 돌려보자. 1974. 한국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쌀독의 바닥이 드러날까 걱정을 하는 집이 꽤 있었습니다. “이밥(쌀밥)에 소고기국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래도 일부 형편이 넉넉한 집에선 가끔 불고기 외식을 나서기도 했고, 한여름엔 삼계탕 또는 닭백숙을 끓여 복더위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불고기 외식은 보통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목에 힘을 주며 아이들에게 불고기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이런 날은 필시 아버지에게 공돈이 생겼거나 어머니가 곗돈을 탄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따라나섭니다. 그래도 불고기로 배 두드리고 나올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불고기 몇 점 집어먹고, 고깃국물에 비빈 밥으로 배를 채우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습니다. 오랜만에 달달한 불고기 냄새를 실컷 맡았기 때문이죠.

해먹기도 부담스러웠던 메뉴

삼계탕이나 닭백숙은 밖에서 사 먹기보단 주로 안에서 해 먹기였습니다. 이유는 무척 단순합니다. 돈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죠. 그래도 가계 살림에 부담이 커서 자주 집안에서 해 먹진 못했습니다. 대개 한여름에 두어 차례로 끝났다. 무더위에 지친 가족들 몸보신시킨다는 명분이었습니다. 닭 한 마리 잡아서 끓이면 분배는 뻔했습니다. 닭다리 하나는 아버지 몫, 또 하나는 귀남이 아들 몫이었죠. 누나와 여동생은 가슴살 차례라도 오면 땡잡은 날이다. 멀건 국물에 끓인 닭죽 한 그릇을 받아들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나마도 어머니는 자신의 몫까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사실 50년 전 어린 시절은 민이식위천이라기보다 민이육()위천이었습니다. 불고기만으로 배 터지게 먹는 게 소원이었고, 닭 한 마리 통째로 받아 신나게 뜯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배 터지는 것은 고사하고 배 나올 우려 때문에 고기를 피하는 작금의 현실과 비교한다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정말이지 반백년 세월이 흐른 2024년의 불고기와 삼계탕(닭백숙)의 위상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살 만해지니 고기가 하늘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불고기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옛 문헌에 등장하는 맥적이나 너비아니와 맥을 이을 순 있지만 동일한 메뉴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지요. 실제 1950년대 이전의 문헌에서는 불고기란 단어가 보이지 않습니다. 1939년 조선요리제법에서는 우육(牛肉)구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반세기전 불고기는 귀한 소고기 요리에 더해진 달달한 맛이 포인트였을 겁니다. 단것 자체가 귀하던 시절, 설탕이 들어간 쇠고기 음식은 두 말 할 것 없는 최고의 메뉴였을 겁니다. 이 귀한 음식을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고기를 얇게 저미고, 양파와 파도 뜸뿍 썰어 넣어 양을 늘렸습니다. 국물도 아까워 냉면 사리를 넣고, 그것도 모자라 밥까지 비벼 먹었습니다.

그런데 설탕 듬뿍이던 불고기가 어느 날부터 설탕 아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단맛을 확 줄인 것은 아니었지요. 일부 설탕의 양을 꿀로 변화를 준 겁니다. 당시엔 건강상의 문제이기보다 작업상의 편의성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불고기는 연기가 많이 나고 쉽게 타서 불판을 닦을 때 무척 성가셨기 때문이란 겁니다. 여기까지는 불고기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국물이 있는 서울식 불고기. 불판도 석쇠가 아닌 구멍이 숭숭 뚫린 노란색의 불룩한 신주철판에 올려서 굽는 것 말입니다.

불고기보단 고급 부위 직화구이

그런데 요즘 이런 불고기는 인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입맛이 고급화되면서 안심, 등심, 갈빗살처럼 원하는 부위를 골라 생고기로 직접 숯불에 구워 먹는 식으로 소고기구이 패턴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석쇠에 굽는 직화구이가 1990년대 초 급부상합니다. 광양식이니 언양식이니 하는 불고기입니다. 일명 국물 없는 불고기로 통하는데 주머니 형편이 좋아지면서 양파나 대파를 듬뿍 넣어 양을 부풀린 서울식 국물 불고기를 밀어내고, 고기의 본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국물 없는 불고기 쪽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이 돌아선 겁니다.

불고기감으로 쓰는 소고기 부위는 어딜까요. 가격으로 따져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당연히 불고기보다 값이 센 갈비나 안심, 등심 부위는 아닙니다. 정육점에선 기름기가 적은 엉덩이 살이나 어깨살을 내놓습니다. 그렇지만 불고기 전문점에선 채끝을 많이 씁니다. 채끝은 등심의 가장자리. 가운데는 뚝 잘라 고급 구이용으로 내고, 자투리 부분을 양념에 버무려 불고기감으로 내놓는 거죠. 등심의 부드러운 맛을 내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점이 큰 매력이라고 불고기집 주인들은 설명합니다.

한편, 국물 있는 서울식 불고기는 한일관’, ‘우래옥등 서울에 있는 전문점 몇 곳에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아직도 외국인들은 김치와 더불어 서울식 불고기를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인정해줘서 다행입니다.

삼계탕 대중화를 이끈 일본인과 중국인

이에 비해 삼계탕은 승승장구입니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즐겨 찾는 메뉴가 됐습니다. 여름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말부터 말복까지 50여일은 하루하루가 삼계탕의 날이라고 할 정도로 삼계탕 전문점엔 손님들이 줄을 잇습니다. 제아무리 잘난 보양식이 있다 해도 대한민국 복날을 접수한 것은 삼계탕입니다. 삼계탕의 매력은 무엇보다 어른아이 따지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점. 게다가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의 보고인 닭고기와 예로부터 만병통치의 영약으로 확인된 인삼이 어우러진 최고의 전통 보양식입니다.

사실 삼계탕의 대중화에는 일본인이 큰 힘을 보탰습니다. 1970년대에 밀물처럼 들어오던 일본 관광객들이 고려인삼이 들어간 음식, 즉 삼계탕을 찾기 시작하자 이들을 겨냥한 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2000년대 이후엔 중국인까지 가세해 외국인도 좋아하는 삼계탕이란 위치로 끌어올렸습니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단골집에 얽힌 일화

삼계탕 대통령으로 통하는 고 노무현대통령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도 있습니다. 당선 전부터 자주 다니는 삼계탕집이 있다고 알려진 뒤로, 복날이면 이 집 삼계탕은 맛볼 꿈도 꾸지 말라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재임시절 에피소드도 있는데 노대통령이 직접 주인에게 청와대 조리사를 보낼 테니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는데 그럴 수 없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곳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삼계탕 전문점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행복한 건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을 수도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닭이 흔해진 까닭도 있지만 혼자 먹기에 딱 맞는 사이즈의 삼계탕 전용 닭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유명 삼계탕 집에선 닭 한 마리를 일인분 질그릇에 담아 펄펄 끓여서 내놓습니다. 부화한 지 50일 정도 된 웅추(雄雛)’라고 하는 수평아리입니다. 살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해 씹는 맛이 좋습니다. 여기에 요즘은 전복이나 홍삼을 더해 고급화한 황제급삼계탕도 등장했습니다.

삼계탕의 진한 국물 맛은 닭발의 재주

이 대목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 하나. “음식점 삼계탕이 집에서 끓인 것보다 국물이 더 진하고 걸쭉하다. 또 인삼 향도 강한데 그 까닭이 뭔가입니다.

보이지 않는 맛내기 노하우가 있습니다. ‘쌀품닭(뱃속에 찹쌀밥을 품고 있는 닭)’ 또는 다꼬닭(뱃속의 찹쌀이 빠지지 않게 다리를 꼬아 놓은 닭)’으로 불리는 삼계탕 뚝배기 안에 담겨 있는 닭 한 마리. 여기에서 닭고기의 빠진 부위가 있습니다. 바로 닭발. 자취를 감춘 이 닭발이 재주를 부린 것입니다. 손님들은 눈에 안 보이니 그냥 버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삼계탕 전문집에선 닭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닭발을 육수 낼 때 아주 요긴하게 씁니다. 닭발을 육수로 따로 우려내는 이유는 닭발에 피부미용과 관절에 좋다는 콜라겐 성분이 많아서입니다.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이 국물에 웅추 한 마리씩 넣고 또 끓여내니 국물이 진할 수밖에 없겠지요?

요즘은 1인분에 닭 한 마리를 내지 않고, ‘반계탕이란 이름으로 반 마리만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삼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잔뿌리를 쓰기도 합니다. 가격도 절반 수준인데, 묘하게 삼향이 강하고, 닭고기 국물맛도 진합니다. 제대로 된 집에서 먹는 것처럼 몸에 좋은 진국을 받은 느낌입니다. 여기에는 업소들만 안다는 잔꾀가 숨어 있습니다. 진한 닭고기의 맛의 비법은 치킨파우더와 찹쌀가루. 이 둘을 넣으면 뽀얗고 걸쭉한 국물이 돼 입에 착착 붙습니다. 진한 삼향은 인삼차 덕분인데 음식 내기 직전에 인삼차를 넣으면 제대로 된 강한 인삼향이 납니다. ‘를 부린 점은 있지만 어떤 것이든 못 먹을 건 아니니 걱정할 건 없겠지요?

삼계탕의 명가로 꼽히는 집은 주로 서울에 모여 있는데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있는 고려삼계탕을 비롯해 북창동의 장안삼계탕’, 체부동의 토속촌’, 신길동의 호수삼계탕등이 있습니다.

 

유지상 맛 칼럼니스트
유지상 맛 칼럼니스트

유지상 푸드칼럼니스트

- () 씨알트리 대표이사 /()한국식문화네트워크     이사장

- KBS 6시 내고향맛있을지도출연중

- tvN '한식대첩4'심사위원

- .중앙일보 음식전문 기자

[저서]

- 유지상의 테마맛집 /내남자의 앞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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